백종권은 1990년대 한국 복싱의 마지막 전성기를 장식한 대표적인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테크닉으로 국내외 복싱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입니다. 그는 국내 타이틀을 넘어 아시아 무대와 세계 랭킹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하며,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한국 복싱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백종권 선수의 성장 과정, 주요 타이틀 매치와 경기 스타일, 그리고 한국 복싱에 남긴 유산과 영향력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 1. 탄탄한 기본기에서 시작된 복싱 인생: 백종권의 성장 배경과 데뷔
- 2. 한국 챔피언에서 세계 무대 도전까지: 백종권의 주요 타이틀 매치와 업적
- 3. 복싱계에 남긴 영향력과 백종권의 진정한 의미
1. 탄탄한 기본기에서 시작된 복싱 인생: 백종권의 성장 배경과 데뷔
백종권은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그는 유도와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복싱부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복싱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학교 복싱부는 전통적인 스파르타식 훈련이 이뤄지던 시기였으며, 백종권은 강한 체력과 끈기 있는 성격으로 단기간에 기량을 향상했습니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국체전, 대통령 배 복싱대회 등에서 꾸준한 입상을 기록했고, 특히 빠른 스텝과 정교한 잽,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으로 지도자들 사이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의 복싱 스타일은 정통 아웃복서에 가까웠지만, 필요할 땐 인파이터로서의 전환도 가능했던 멀티 스타일의 복서였습니다.
1990년대 초, 프로 전향을 결심한 백종권은 라이트급(135파운드)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국내 복싱은 세계 챔피언들을 다수 배출했던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고 있던 시기였고, 백종권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전통을 계승할 유망주로 언론과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데뷔 후 초반 경기에서 그는 연승을 거두며 빠르게 랭킹을 올렸고, 곧 국내 라이트급 타이틀전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는 매 경기 철저한 준비와 상대 분석으로 경기에 임했고, 실제로 당시 인터뷰에서도 “승부보다 과정에서의 완성도를 중요시한다”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훈련에서도 그는 기초 체력과 방어 훈련을 가장 중시했으며, 상대의 패턴을 기억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해, 한 번 맞은 기술은 다음 경기에서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 똑똑한 파이터로 평가받았습니다.
2. 한국 챔피언에서 세계 무대 도전까지: 백종권의 주요 타이틀 매치와 업적
백종권이 가장 빛났던 시기는 국내 라이트급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부터입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당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전 챔피언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며 대한민국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이 경기는 전국 생중계로 방영되었고, 복싱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 명승부였습니다.
타이틀 획득 후 그는 두 차례의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안정적인 챔피언 자리를 유지했으며, 각 경기마다 완성도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국내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백종권은 더 높은 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복싱 연맹(ABCO) 챔피언에 도전하며, 태국, 일본, 필리핀 등의 강자들과 맞붙었습니다.
특히 일본 원정 경기는 큰 관심을 모았고, 그는 격렬한 접전 끝에 판정패했지만 접전에서 물러서지 않는 강한 투지를 보여주며 일본 복싱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후 세계 복싱 협회(WBA)와 세계 복싱 평의회(WBC) 인터내셔널 랭킹에도 이름을 올리며 세계 타이틀에 근접한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비록 세계 타이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는 국내 복싱 팬들에게 오랜만에 ‘해외 무대에서도 통하는 한국 복서’라는 희망을 보여준 인물로 기억됩니다. 그의 복싱 스타일은 빠르고 정확한 잽을 중심으로 한 포인트 복싱, 동시에 중후반 라운드에 강한 체력전 스타일을 함께 구사했습니다.
특히 7~8라운드 이후 경기 운영 능력은 국내 어떤 선수보다 뛰어났고, 후반에 강한 파이터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당시 대부분의 한국 복서들이 단순히 공격 중심의 전진 복싱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 대조되며, 백종권은 전술과 전략이 공존하는 복싱의 진화된 형태를 선보인 대표 선수였습니다.
3. 복싱계에 남긴 영향력과 백종권의 진정한 의미
백종권은 은퇴 후에도 복싱계에 꾸준히 기여해 온 인물입니다. 그는 경기 도중 보여준 냉정함과 신중함, 그리고 경기 후 상대에 대한 존중은 많은 후배 복서들이 본받는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후배들이 인터뷰에서 “백종권 선배는 복싱의 태도까지 보여준 인물”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은퇴 후 그는 지도자 생활에 돌입하며 유소년 및 아마추어 복싱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경기 운영, 페이스 조절, 리듬감 있는 훈련 등 경기력의 내면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국체전 출전 선수 다수 배출은 물론, 일부 선수는 국가대표로 성장하며 그의 코칭 능력도 인정받게 됩니다.
또한 그는 지역 체육관을 운영하며 복싱의 대중화에도 기여했습니다. 단지 프로 선수를 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 체육으로서 복싱의 장점을 알리는 데 집중하며, 일반인과 청소년 대상 복싱 교실을 운영했습니다. 이는 복싱이 단지 격투스포츠가 아니라 체력과 집중력, 인내를 기르는 건전한 스포츠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론과 인터뷰 요청이 있을 때도 그는 늘 복싱 전체를 위한 목소리를 내며, “복싱은 혼자 하는 스포츠 같지만,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장하는 스포츠”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또한 경기 외적으로는 스포츠 윤리와 선수 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내며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복싱 문화 조성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결론: 라스트 챔피언으로 기억되는 백종권의 가치
백종권은 수많은 타이틀이나 화려한 KO 승부로 기억되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복싱의 본질인 '기술', '전략', '정신력'을 고루 갖춘 복서로서 한국 복싱계에서 귀중한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선수 경력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침체기를 맞은 한국 복싱계에서 마지막으로 팬들의 기대를 모은 ‘라스트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명성에 걸맞게 복싱을 단순한 경기 이상으로 끌어올린 선수였습니다. 지금도 복싱 팬들과 후배들은 백종권을 떠올릴 때 ‘기술이 완성한 경기의 품격’을 떠올립니다. 그의 복싱은 그 자체로 교과서였고, 그는 강하지만 겸손했던 선수였습니다.
백종권의 발자취는 한국 복싱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복싱의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는 귀중한 자산입니다.